티스토리 뷰

Contents 접기
반응형
 
모든 계절이 유서였다
이번 책에는 다양한 차원의 계절이 있다. 1. 꽃 그리고 산책길의 단상 2. 그리고 내면의 기억 속 정원, 당신, 그림움 3. 그리고 슬픔의 기록 4. 흘러가고 있는 순간의 대면, 영원 부제의 Ritas Garten은 리타의 정원이다. 여전히 꽃과 자연에 기대어 삶의 시간을 풀어갔다.
저자
안리타
출판
홀로씨의 테이블
출판일
2021.01.08

당신    

아직 슬픔이 남아있다면
아직 눈물이 남아있다면
우리는 생의 한가운데에서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모든, 말라죽어 가는 영혼들에겐
눈물도, 감정도, 표정도 없다.  

눈물은 분명 살고자 하는 의지인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누구보다도 많은 눈물을 지녔다는 것은
이 삶을 진정 사무쳐 사랑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니 당신,
여전히 뜨거운 사람,  

펑펑 울어도 좋다. 

 

안리타의 에세이를 읽으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공감이 가서일 까요.

단어만을 보면 담백할 듯한데, 심장이 쿡 조여오듯 단어 하나하나가 연결된 문장의 농도가 저에게는 짙게 다가옵니다.

 

가끔은 우울한 마음이 더 깊어져서 내가 왜 사는가,라는 실존주의에 대해서 나 자신에게 되물음을 하기 도하죠,

또는 누군가의 가까운 죽음을 지켜볼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인간의 연약함이 표면 위로 올라오게 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도 있습니다. 

 

저는 24살에 아빠가 하늘나라 가셨고, 지난주에는 할머니가 하늘나라를 가셨어요. 우리가 당연스럽게 생각하는 호흡들이 저희 아빠와 할머니에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자가호흡이라는 것이 어려워 기도삽관을 하며,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보내고 계셨죠.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야 그제야 후회가 물 믿듯이 흘러옵니다. 그저 면회 때 바라보는 모습밖에는 제가 할 수 없는 것들이 가득했죠. 항상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순간도 있지만, '더 잘할걸, 더 연락할걸, 더 사랑한다 말할걸'이라고 후회가 가득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제 보지 못한다라는 무서움과 두려움 때문일까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 문턱 넘은 '죽음'에 까지 외로이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까요,  잠들고 있는 할머니와 아빠의 귀에 사랑한다고 수없이 얘기하는 그 순간 들을 지금도 생각하면 가끔은 숨이 벅차기도 합니다. 하나둘씩 내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다는 건 너무나 쉬운 일들이 아니었어요. 그저 한번 겪으면 괜찮겠지라는 일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 안리타의 시들을 보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닌 듯 위로가 몰려와요. 

 

위에 쓰여있는 당신이라는 에세이를 보면, 여전히 삶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를 통해서, 지금까지 내 주변에 떠나간 사람들을 나는 사랑했구나, 진정으로 사랑이라는 것을 열렬히 해왔으며, 사랑을 받아서 이렇게 아파하고 있었구나라는 위안이 됩니다. 

후회로 가득해 나의 죄악과 연약함에 가슴을 치며 나에 대한 후회보다는 나는 여전히 뜨거운 사람이었구나, 내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남겨주고 갔습니다. 

 

안리타의 흐르는 강물처럼 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생의 사랑, 고여있지 않아서 좋다.
머물지 않아서 좋다.
바람을 타고 부서지는 햇살에 
네가 뛰어들어서 좋다.
내 물결 잔잔히 다 느끼고 갔으면,

나는 소리 없이 투명하게 흐를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해 흐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사실 자연의 순리대로 그저 살아가는 것, 이 맞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는 쥐어 잡고 싶은 권력과 명예 부가 결국엔 죽음 속에는 쥐어지지 않는 한 줌의 공기와 같죠. 우리는 가끔은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의 궤적들을 봤을 때, 내가 사람으로 또는 어떠한 '무엇'으로 태어나게 됩니다. '내가 태어남'은 나의 선택이 아니죠. 그렇다고 부모님의 선택도 아니죠. 그저 부모님도 아이를 낳았더니 그게 '우리' 였던 겁니다. 우리는 아이도, 성별도, 부모님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사랑'이라는 단어들의 삶들이 시작이 됩니다.  

 

안리타 에세이에서 이런 얘기가 있어요.

알고 보면 내 곁에 의식하지 못했던 사소한 모든 일이, 이렇게 절을 하며 울듯 감동스러운 것이다. 어쩌면 그게 전부 인지도 모르겠다. 

... 살결에 닿는 그 무엇 하나도 사소한 것이 없어서 소중한 것들은 늘 말이 없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한결같이 주변에 존재했다.

 

우리의 삶은 어쩌면, 다 제자리에 고이 있는 것들부터 다시 봐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흘러가는 것에 자연스럽고, 인간이 할 수 없는 신의 뜻을 순순히 받아들이고, 그저 하늘이 준 모든 걸 느끼고 보고 바로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그 무엇 하나도 사소한 것이 없이 살아가내는 것이 '우리의 삶'이라는 것을요.

 

안리타 에세이를 보면서, 권대웅의 '삶을 문득이라 불렀다.'라는 시가 생각이 납니다.

 

지나간 그 겨울을 우두커니라고 불렀다.
견뎠던 모든 것을 멍하니라고 불렀다.
희끗희끗 눈발이 어린 망아지처럼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미움에도 연민이 있는 것일까 
떠나가는 길 저쪽을 물끄러미라고 불렀다. 

사랑도 너무 추우면 아무 기억이 나지 않을 때가 있다.
표백된 빨래처럼 하얗게 눈이 부시고
펄렁거리고 기우뚱거릴 뿐
비틀거리며 내려오는 봄 햇빛 한 줌
나무에 피어나는 꽃을 문득이라 불렀다.
그 곁을 지나가는 바람을 정처 없이라 불렀다
떠나가고 돌아오며 존재하는 것들을 
다시 이름 붙이고 싶을 때가 있다

홀연 흰 목련이 피고
화들짝 개나리들이 핀다
이 세상이 너무 오래되었나 보다
당신이 기억나려다가 사라진다

언덕에서 중얼거리며 아지랑이가 걸어 나온다
땅속에 잠든 그 누군가 읽는 사연인가
그 문장을 읽는 들판
버려진 풀잎 사이에서 나비가 태어나고 있었다
하늘 허공 한쪽이 스르륵 풀숲으로 쓰러져 내렸다
주르륵 눈물이 났다
내가 이 세상에 왔음을 와락이라고 불렀다

꽃 속으로 들어가 잠이 든 꿈
꽃잎 겹겹이 담긴 과거 현재 미래
그 길고 긴 영원마저도 
이생은 찰나라고 부르는가
먼 구름 아래 서성이는 빗방울처럼
지금 나는 어느 과거의 길거리를 떠돌며
또다시 바뀐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 시를 보면 우두커니, 멍하니, 희끗희끗, 연민, 펄렁거리고 비틀거리며, 문득, 정처 없이, 세상에 왔음을 와락이라고 부르며, 이 생은 찰나라고 부르는가 라는 이러한 단어들을 내가 살아오는 지금의 삶에 느낄 수 있다면, 내 삶을 물결처럼 잘 느끼고 간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러한 시들을 보며, 나는 이 생을 찰나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삶'에 대해 느꼈는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문학이 주는 큰 행복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들 살아가는구나, 살아내는구나라는 위안을 얻으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당신의 삶의 단어가 궁금합니다. 

안리타 - 완성을 향하는 시간 중

반응형